본문 내용 바로가기
페이스북 연동

국내 최초의 자동차

‘시발자동차’

살아가는 과정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할 무렵이면 누구나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을 느끼게 됩니다. 사회적 흐름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에 사상 및 문화, 그리고 산업과 관련된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근대화가 이루어진 20세기 초에 우리나라는 식민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해방과 함께 전쟁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굴곡진 역사는 산업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었습니다. 해방 전후로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은 기껏해야 폐차 상태의 미군 지프나 트럭의 부속품을 망치와 손재주로만으로 대강 두드려 맞추고 드럼통을 펴서 몸체를 만들어 내던 수준이었습니다.

시발자동차 홍보포스터
<시발자동차 홍보포스터>

그나마 자동차산업이라 할 만한 외형을 갖춘 것은 1955년 ‘국제차량주식회사’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승용차 ‘시발’이 탄생하면서부터입니다. 시발(始發)은 이름 그대로 우리 자동차 산업의 시발점이 된 차입니다. ‘시발’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시대적 상황이 열악하더라도 우리는 새로움에 대한 열망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1955년 10월, 해방 10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를 통해 첫 모습을 보인 시발자동차는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국내 산업을 살리기 위한 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이 자동차는 우리에게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큰 선물이었습니다.

가회동 부잣집 3형제인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형제가 사장, 부사장, 공장장을 맡아 운영한 국제공업사는 많은 공업사 중에서도 유독 소문이 자자하게 났던 곳입니다. 막내 최순성의 자동차 손보는 솜씨가 입소문으로 널리 퍼질 만큼 특출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 폐차된 자동차의 부품을 모아 고치고 철판을 두드려가며 재조립하는 일을 하여 짭짤한 수입을 얻게 된 국제공업사는 ‘재생은 이제 그만, 우리 손으로 차를 만들어보자’는 굳은 결심을 하고 회사를 국제차량주식회사로 확대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동차를 만드는 일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1만 개가 넘게 들어가는 부품을 일일이 만들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가장 중요한 엔진을 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엔진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제품을 수차례 망가뜨린 후 드디어 4기통 엔진을 완성하기에 이릅니다.

자동차가 완성된 후 세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첫 자동차에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이 된 것입니다. 숱한 고민 끝에 ‘처음 시작한다’는 뜻의 ‘始發(시발)’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의 자동차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표기는 한글로 하고 사명도 시발자동차 주식회사로 바뀌었습니다.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삼형제와 시발자동차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삼형제와 시발자동차>

네모난 상자를 연상시키는 지프형 시발자동차는 4기통 엔진에 두 개의 문을 단 차량입니다. 당시에는 아주 세련된 스타일의 차였으니 얼마나 관심이 집중되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당시는 택시로 쓸 만한 마땅한 차가 없었기 때문에 택시업자들로부터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밀 듯 밀려오는 주문을 소화해 내지 못해 국제차량 주식회사는 서울 용산구 문배동에 있던 주물공장을 인수해서 생산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하지만 적은 인원으로 일일이 망치를 두드려 가며 만드는 수공업 방식으로는 한 달에 100대를 만들기도 버거웠습니다.

시발택시
<60년대 서울역 앞 시발택시 행렬>

1962년에 마련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일환으로 발표된 ‘자동차공업보호법’에 따라 승용차는 새나라자동차가, 중대형차는 시발자동차가, 엔진개발은 한국기계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정부는 닛산의 블루버드 400대를 수입해 판매 권리를 새나라에 넘겨주고 새나라 택시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도록 했습니다.

이 기세에 밀린 국제차량 주식회사는 결국 ‘시발’의 생산을 포기하게 되고, 대형버스를 조립하다가 1964년 완전히 문을 닫았습니다. 생산을 시작한 지 10년 만의 일입니다. 기가 막힌 손재주로 만들어진 우리의 첫 자동차 시발 자동차는 10년 동안 2천 대 넘게 생산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닫기
상단으로